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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학교가는길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1-07-21
  • 조회수 2468
첨부파일 img.movist.jpg | 학교가는길 - 류미례.hwp

17년만에 세워진 특수학교 이야기

김정인 감독의 <학교가는 길>

 

영화감독 류미례

 

전국 특수학교 재학생의 절반은 매일 왕복 1~4시간 거리를 통학하며 전쟁 같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장애 학생 수에 비해 특수학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20203,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공립특수학교 서진학교가 개교했습니다. 서울시내 특수학교로는 2002년 경운학교 이후 17년 만의 개교였습니다. 201311월 서울시 교육청이 설립을 예고한 지 6년 만의 일이었고 그 시간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서진학교라는 이름이 낯선 분들이라도 무릎 꿇은 엄마들의 사진은 기억할 것입니다. 이른바 님비현상이라 불리는 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었지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 부모들의 숱한 눈물과 호소가 있었고 현실의 흘러가는 장면들을 다시 곱씹어보게 만드는 예술가들은 영화 <학교가는 길>과 연극 <생활풍경>을 통해 그때 그 장면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김정인 감독의 <학교 가는 길>을 준비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은 제12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25회 인천인권영화제 개막작, 46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 등 영화제들을 통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55, 극장개봉을 통해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도 마을 분들이 극장대관 상영을 진행한 덕분에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새벽 등교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학교가 왕복 3시간 거리에 있기에 수업시간인 9시에 늦지 않으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채 학교버스에 타서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의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이 영화에는 주로 엄마들이 등장합니다. 엄마들은 학교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 뿐 아니라 장애가 있는 자녀들과 함께 주말농장에 가고, 산책을 하고, 수제 비누를 만드는 일들을 합니다. 엄마들이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잘했어!”입니다. 사소해보이는 성취들을 환한 웃음과 잘했어!” 라는 말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엄마들의 모습은 따뜻하면서도 강인해보입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강인했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 이은자 씨와 딸 지현 씨가 함께 감자전을 부치는 장면은 특별히 감동적입니다.

 

엄마의 지도에 따라 지현 씨는 껍질을 벗긴 감자를 썰고 믹서기에 가는 일을 합니다. 팬에 부쳐서 먹음직스런 감자전이 만들어지고 나면 무표정한 얼굴로 엄마를 놀리며 혼자 감자전을 맛있게 먹습니다. 은자 씨가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카메라는 감자전을 찢는 지현 씨의 젓가락을 비추고…… ~ 지현이 젓가락질 잘한다라는 탄성이 들립니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면 그 목소리가 2005년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2005621. 그 날은 지현 씨가 처음 젓가락을 잡은 역사적인 날이었고 화면 속 엄마는 나중에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우스울까요?”라고 발랄하게 설명합니다. 지현 씨를 안고 놀이터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서 아이의 표정이 어땠냐고 묻고, 두 살이 됐는데 말도 못한다면서 증거로 남겨야겠다고 말하는, 옛날 화면 속 엄마 은자 씨의 모습은 모두 지현 씨의 장애를 알기 전의 것들입니다. “언니처럼 똑똑해져!”라는 희망사항을 마지막으로 곧 현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현 씨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그제서야 지현 씨의 성장이 보였다고. 자기 속도에 맞춰서 조금씩 성장을 해온, “이제는 누구하고도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지현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현재의 목소리까지 지현 씨와 은자 씨의 평생의 사연이 3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제 은자 씨는 지현 씨의 현재를 위해 무릎을 꿇습니다.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쇼 하지 말라고 비아냥 댈 때 그 자리에서 함께 무릎을 꿇었던 서울지부 대표 김남연 씨는 나중에 앉아있는 우리가 모욕을 당하는 건 괜찮은데 그 아이들이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모욕을 당할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결국 서진학교는 문을 엽니다. 그것이 끝이 아님을, 그리고 부모들이 싸워왔던 이유가 단지 내 자식 집 가까운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 때문만이 아님을 영화는 너무나도 잘 보여줍니다. 반대주민들이 뜻을 접은 것은 서울시 교육청이 향후 통폐합 학교 발생시 해당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최우선 건립하는 데 협조하기로 했다는 합의문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우리가 죽은 다음에 어찌 살까를 걱정하는, 그래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보겠다며 싸워온 것이었는데 서울시 교육청의 특별한 약속 때문에 서진학교 싸움은 나쁜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며 한탄합니다. 은자 씨는 외칩니다. “언제까지 특수학교를 지어주는 대가로 뭔가를 제공해야 합니까? 왜 특수학교를 특수하게만 바라봅니까?”라고요.

 

서초구에서는 특수학교를 짓는 대가로 주민들이 땅의 등급상향 조정을 요구하고 있고 중랑구에서는 부지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도 덧붙입니다. 이제는 자녀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내 자식의 가까운 미래 때문이 아니라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소외당하는 누군가를 위한 싸움입니다.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자녀를 만나 함께 살아오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2시간이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축복입니다.

 

최근 들어 특수학교에서의 장애학생 폭행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구미, 제주, 전북, 인천의 특수학교에서 폭행사건이 발생했고 대전에서는 사회복무요원이 장애학생을 폭행해서 경찰과 교육 당국이 경위 파악에 나섰습니다. 모두 올해 발생한 일들입니다. 눈물 흘리고 무릎 꿇어가며 마침내 특수학교를 만들어낸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보고 나서 세상으로 눈을 돌리니 특수학교 폭행사건들이 보입니다. 특수학교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님을 그렇게 세상은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절망하지도 쉽게 낙관하지도 말아야겠지요. 세상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긴 시간을 기록한 감독 덕분에 우리는 지켜볼 수 있으니까요. 상영관을 찾거나 가까운 사람들과 뜻을 모아 대관상영을 신청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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