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층을 차례차례 구경하며 어떤 꿈이 영글어가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웹와치는 장애인들의 웹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 사이트들을 모니터링하여 WA(Web Accessibility 웹 접근성), SA(Software Accessibility 소프트웨어 접근성), MA(Mobile Accessibility 모바일 접근성) 등의 인증을 부여하는 국가지정 웹 접근성 품질인증 기관입니다. 국내에선 2009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공표되면서 공공기관부터 은행, 대기업 등이 순차적으로 정보접근성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그와 동시에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건비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웹와치가 설립되었습니다.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 산하 사업단으로 출발한 웹와치는 이후 주식회사로 독립하였고, 적자에 허덕이던 초창기를 지나 지금은 수익을 내는 사업체로 성장하였습니다. 모니터링과 품질인증 사업 외에 SI업체들이 사이트를 구축할 때 자문과 컨설팅도 합니다. 웹와치의 수익을 토대로 에이블 허브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도 6층에선 웹와치의 장애‧비장애 직원들이 섞여 앉아 열심히 사이트들을 모니터하고 있습니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는가? 자막을 제공하는가? 키보드만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 반복영역은 건너뛰는가? 자동재생이 금지되어 있는가?’ 등 24개 항목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한 해 1천~2천여 건의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는데, 인증을 의뢰한 기관의 95% 정도가 요건을 만족하여 마크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1차 심사 후에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합니다. 모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웹와치는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작된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는 포럼, 세미나 등을 통하여 장애인 인권 향상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장애인정책 모니터링과 백서 발간입니다. 이를 도맡아하는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 산하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에선 그간 복지부의 예산을 받아 무려 7천여 건에 달하는 장애인 관련 조례를 모니터링하고 차별 조항을 찾아내서 개정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전체 7천여 건 중 1천 7백여 개의 장애인 관련 조례가 차별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이 중 30~40% 정도가 개정되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는 100% 개정되었다고 합니다.
에이블 허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4층에는 디딤과 자람이 있습니다. ‘스페이스 디딤’은 장애인들을 위한 평생학습센터입니다. 현재는 장애 성인들 대상의 초중고 검정고시반을 운영하며, 자립생활대학을 위탁 운영 중입니다. 앞으로 동료 상담가, 장애 인권강사 등을 양성할 계획이며, 3층에도 강의실을 더 만들 예정입니다.
‘디딤’ 강의실 맞은편에 있는 ‘자람’은 장애인 관련 사업의 인큐베이팅 룸입니다. 이범재 대표는 웹와치의 수익으로 단지 장애인을 돕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자립하는 데 보탬이 될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 장애인 사회서비스의 창업 인큐베이팅을 생각해냈습니다. 형태는 사단법인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상관없고, 장애인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서울시에서 육성사업을 수주하여 2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람에는 루게릭병 환자 가족들이 모여 최중증 장애인을 위한 전문 활동보조인 중개기관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인에게는 활동보조인 제도가 있는데, 루게릭병 등 최중증 장애인의 경우 더 전문적이고 훈련된 활동보조인이 필요하기에 수요는 충분합니다. 재원 조달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업으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합니다.
그 옆방에선 장애인을 위한 소형주택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이 중 어떤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자람에서 꼭 싹을 틔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포용은 논리적인 접근이 아니다
이렇게 각 층을 돌고 마지막으로 7층 별마루에 올랐습니다. 며칠 전에는 에이블 허브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서 삼겹살 파티도 했다고 합니다. 이범재 대표는 장애인의 자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에이블 허브를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이 부모나 전문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 직장에서 단순 업무만 맡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애인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고품질의 업무에 투입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이를 위해 어떤 사업을 벌이더라도 장애인을 소비자로만 생각지 않고, 생산자로 지속적으로 일해 나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포용이라는 게 논리적인 인식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장애인이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로의 턱을 없애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그렇게 도로의 턱을 없애니 그 위로 휠체어보다 더 많은 유모차, 노인, 자전거, 심지어 야쿠르트 전동차가 지나갑니다. 턱을 없애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턱을 없애보니 장애인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더 편리하고 유용한 겁니다. 이처럼 포용이란 ‘이렇게 될 것이다’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대담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해요. 해보면 다른 게 나타나니까요.”
며칠 전 영국에 다녀왔다는 이 대표는 장애인 건강관리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료보험이 국영화되어 있는 영국에선 재정 적자가 매년 커져 당뇨, 고혈압 등 병원에서 그다지 해줄 게 없는 만성질환자의 경우,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가 건강을 관리하는 ‘개인건강예산제’를 시범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디어를 우리나라에 가져온다면 의료로 넘어가기 전 금주, 금연, 심리상담 등의 조언과 운동컨설팅을 해주는 장애인 건강관리사를 구청이나 주민센터에 둘 수도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정책이 되기까지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겠지만 천생 사업가이자 활동가인 이 대표는 이제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묵묵히 포기하지 않고 전진할 것입니다. 2명으로 시작했던 장애인인권포럼이 전체 인원 40~50명이 넘어가는 에이블허브로 커진 것처럼, 에이블 허브 안의 수많은 씨앗들이 널리 퍼져 네트워크를 이루고 튼튼하게 뿌리내릴 날을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에게 "평생학습이란 무엇인가" 물어보았더니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평생의 짐, 평생의 즐거움’
“세상에 공부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 어딨겠어요? 하지만 공부란 평생해야 하고, 또 하다보면 즐거울 때도 있고, 그런 거죠.”
희망에 기대지 않고,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묵묵히 끈기 있게 걸어가는 그다운 대답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장애인 관련 예산을 전부 모니터링합니다. 모든 예산이 그렇듯 장애인 관련 예산에도 나쁜 예산과 좋은 예산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장애인을 수용시설에 수용하거나 생활하게 하는 예산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게 하는 예산이 더 좋고, 중개기관을 거쳐서 복지를 베푸는 것보다는 장애인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되는 예산이 더 바람직합니다. 장애인 예산이라는 범주가 따로 없기 때문에 건축이나 문화 등 관련 없을 것 같은 예산까지 꼼꼼히 조사하여 장애인 예산을 개념화하는 게 저희 일입니다. 일단 총량을 계산한 뒤 분류하고 비교 분석합니다.
이 두 가지가 연속 사업이고, 단발성으로 언론 모니터링도 하고, 매해 중점 사업을 합니다. 올해는 여성장애인의 건강권에 관한 모니터링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습니다.”